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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벚꽃 축제의 역사

리오넬메씨 2024. 3. 25.

우리나라 벚꽃축제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벚꽃축제는 일본의 하나미(花見)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미라는 단어가 꽃구경이라는 뜻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벚꽃 구경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하나라는 단어 자체가 벚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내용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벚꽃 축제도 점점 늘어서 전국적으로 커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역별로 작은 벚꽃 축제가 점점 확대되어 지금과 같은 전국적인 벚꽃 축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벚꽃 개화지

조선시대의 꽃놀이와 벚꽃 문화

조선시대에는 사대부와 양반 사회의 문화적 활동으로 꽃놀이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삶을 즐겼는데, 그 중에서도 봄에는 살구꽃과 복숭아꽃을 중심으로 한 화전놀이가 유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삼짇날에 꽃을 감상하고 진달래꽃을 주재료로 한 화전을 먹는 풍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연꽃을 감상하며 시원한 여름을 느끼고, 가을에는 국화를 중심으로 한 황국음이 사랑받았습니다. 이러한 꽃놀이 문화는 양반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벚꽃을 집단적으로 감상하는 문화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벚꽃놀이의 기원과 확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에서 벚꽃놀이가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우이동이 벚꽃놀이의 중심지였으나, 일본인들의 벚꽃놀이 수요가 증가하면서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조선에는 벚꽃이 부족했기 때문에 조선인들도 하나미(벚꽃축제)를 즐기고자 했으나 실제로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일본산 벚나무를 이식하여 창경원에 식재함으로써 벚꽃놀이 행사가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조선의 관제문화 조성에 크게 일조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매일신보를 통해 벚꽃축제 참여를 장려했으며, 일본인들도 조선에서 하나미를 즐기면서 향수병을 달래고자 했습니다. 이로써 벚꽃놀이는 조선의 문화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벚꽃놀이와 관광산업

일제강점기에는 벚꽃놀이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이 발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어 벚꽃놀이를 즐기며 관광 연계 상품이 개발되었습니다. 언론사들이 주최하는 여행단 기획과 함께 철도사무소들도 벚꽃놀이 관광을 촉진하기 위한 임시 열차를 운행했습니다. 이로써 벚꽃놀이 행사는 식민지인 경성의 대표적인 오락 컨텐츠로 자리매김했으며, 서울을 중심으로 한 벚꽃놀이 관광은 광범위한 관광 활성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관광산업의 발전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사회 경제적인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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